전날은 밤늦게까지 뭔갈 한다고 긁적거리다 아침엔 흙을 주물럭거리고, 기분은 맑아졌으나 정신이 멍한 상태라서 꽤 이것저것 사버렸는데, 그중에 한 권이 이 책, MAP OF DAYS.
내용이야 그렇다 치고 전혀 내가 쓰지 않는 색들을 쓰는구나 라는 기분도 들고 요즘 더 색 선택에 인색해져서 무채색들 그리고 원래 그 물질이 가지고 있는 색들만 살려낸답시고 살고 있어서인지, 책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색맹이 숫자가 어렴풋하게 보이는 책을 열심히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.
색은 물론이고 종이의 질하며 인쇄의 완성도 그리고 무엇보다 한컷 한컷 만들어낸 정성이 가득한 책, 나와는 다른 색 팔레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작업이라는 것을 손에 넣는 과정은 아주 간단했다. 슥슥 카드만 한번 긁어주면 되니까.
이 자극적인 책 한 권을 의자 오른쪽 책장에 꽂아두고 일을 하면서, 종이가 프린트 되는 잠시 죄책감 없는 시간이 있을 때라거나, 덕용이가 안아달라고 의자 밑에 올 때, 덕용일 쓰다듬거리면서 꺼내놓고 어슬렁 넘기면서 보고있다.
딱딱하게 굳어있는 어깨와 뇌를 잠시 주물럭거릴 수 있는 경쟁적인 남의 작업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