청운동-공사일지 (1)
11월의 어느 날 막연히 집을 지을 만한 땅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. 집을 짓는다는 숙제를 꽤 길게 미뤄두고 있었지만 슬슬 아들놈도 초등학교에 들어갈만한 나이가 되어가고 하니 한군데 정착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. 아들놈이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돌아보면 어릴 때 저 집에 살았지 같은 추억이 있는 집이 좋겠다 싶었습니다. “그때 아빠가 감나무에 감을 따 줬자나.” 같은 식의 추억 말입니다. (물론 감나무는 없습니다) 나는 기억에 남아있는 모든 어린시절의 집들이 아파트라서 그때의 추억들은 집에 대한 기억이라기 보다는 그때에 일어났던 어떤 사건들에 집중이 되어있었는데, 만약에 공간도 기억의 한 부분으로 남게 된다면 그것도 좋은 기억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.
청운동에 작은 땅을 결정한 것은 몇가지 전제조건을 만족시켰기 때문입니다.
-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는 걸어서 다닐 수 있고 대학생 혹은 그 이후에 독립을 할 때 까지는 한 지역 안에서 거주할 수 있을 것
- 지금은 출퇴근 시간이 왕복 1.5-2시간이 걸리는 것을 1층에 사무실을 옮겨서 확실히 줄일 것
- 아내의 출퇴근에도 지금 정도의 시간 왕복 1시간 이내 일 것
- 주변을 산책할 수 있는 동네일 것
이라는 내용이 어렴풋한 희망이었습니다
다른 후보지도 몇 군데는 있었지만 서울 시내 어디에도 적당히 작은 땅 그리고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의 매물을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. 처음에 찾은 땅은 지금 땅이 아닌 그 옆옆옆집 이었습니다. 연락한 부동산에는 담당자가 다시 전화를 주겠다며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에는 전화를 받지 않아서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친구(인포멀웨어의 성찬씨) 의 집을 계약하러 갔을 때 우연히 들렀던 부동산이 생각이 나서 그 쪽으로 연락해서 약속을 잡았습니다. 집 주인 할머니는 “딸네 집에 갔으니까 주말이 지나야 돌아온다.” , “김장이 끝나면 돌아오겠다.” 하시더니 2-3일 지난 저녁시간쯤 “생각해 봤지만 역시 죽을 때까지 살다가 손자를 줘야겠다.” 라는 소리에 나는 “왜 상속세를 더 올리지 않는가!” 같은 소리를 하며 그 땅은 구입할 수가 없었고 며칠 후에 인터넷 부동산에서도 내려졌습니다.
지금의 땅은 사실 처음 부동산에 갔을 때도 같이 나와 있었고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, 처음에 봐두었던 땅보다 꽤나 더 비쌌고, 북쪽으로 길이 나 있어서 한층 더 올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, 한층 세를 주는 것보다 온전히 우리 가족만 사는게 낫지않나 생각을 했습니다. 저에게 집을 갖는다는 느낌은 공동주택에서 한 부분에 내가 살고있다 보다 좀 더 작은 한 덩어리의 독립적인 개체를 소유한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
하지만 첫 땅이 불발로 끝나자, 며칠간이지만 기대했던 일들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태연한 실망감과 이것도 일이라고 생각하고 사업성 검토라도 해보자 라는 자기 합리화의 끝에 구입을 결정했습니다. 부족한 돈은 벌어서 메꾸고 또 한층 정도는 조그맣게 세를 줘서 그걸로 어떻게 되겠지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. 어디가서도 대우받는 잘 못 입은 명품들을 두른 뻣뻣한 남자분과 내가 왜 이땅을 팔아야 하는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계약을 하러 나온 여자분의 부부에게 거액의 계약금을 치르고 늦은 가을 28.4평의 작은 땅을 그렇게 구입하게 되었습니다.